'목련'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4.08 화사한 봄이 들려주는 꽃 이야기
  2. 2013.02.12 [광주전시] 불어라 봄바람~ 남풍전 (1)


 

 



요즘은 거리를 걸으면 활짝 핀 꽃들을 보느라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따사로운 햇빛과 함께 길을 밝혀주는 봄 꽃! 오랜 시간동안 변함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는 아마 꽃뿐일 것 같습니다. 꽃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대신 마음을 표현해주기도 하고 칙칙한 공간을 밝고 향기 나는 공간으로 변화시켜주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빛깔을 뽐내는 봄꽃의 종류와 꽃말을 알아보겠습니다.^^


봄은 다른 계절들보다 더욱 많은 꽃이 피는 계절입니다. 그렇다보니 꽃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파스텔 톤의 색을 가진 꽃들이 많은 봄. 봄의 대표적인 꽃들의 종류를 알아보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봄꽃들에도 얽힌 전설 또는 꽃말이 있습니다. 꽃에 얽힌 이야기와 꽃말을 새긴 후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을 한다면 더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외적인 부분 뿐 아니라 담긴 이야기도 아름다운 꽃. 대표적인 봄꽃의 이야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튤립

 

튤립은 4~5월에 개화하는 꽃입니다. 꽃병에 꽂아 보관하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이기도 합니다. 튤립의 잎 무게 때문에 길고 얇은 꽃병에 꽂으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지면서 예쁜 곡선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실내에선 금방 피고 질 수 있으니 실내에선 온도가 낮은 곳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튤립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습니다. 마음이 여린 한 소녀가 왕자, 기사, 상인의 고백을 모두 받아들이게 되고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시민들이 비난을 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 소녀는 자신의 생명을 끈을 놓아버리고 이를 가엽게 여긴 꽃의 여신 플로라가 그 소녀를 튤립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태어난 튤립의 꽃송이에는 왕관, 입은 보검, 뿌리는 황금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합니다. 튤립의 꽃말은 이 소녀의 마음인 사랑, 고백, 영원한 애정입니다.

 

 

벚꽃

 

그리스도교 전설입니다. 마리아가 버찌 열매를 남편인 요셉에게 권했지만 거절당했을 때의 버찌 가지가 마리아의 입까지 쳐졌다고 하여 꽃은 처녀의 아름다움, 열매는 천국의 과일로 비유됐다고 합니다.

 

 

 

 

 

봄 길을 가득 채우는 벚꽃의 꽃말은 동 서양이 다르다고 하는데요.

서양에서 벚꽃은 일반적으로 순결, 처녀의 상징이며 꽃말은 교양, 정신 미입니다.

반면 일본에서의 벚꽃은 부와 번영을 뜻한다고 합니다. 밤의 어둠에도 사라지지 않는 색과 향을 내뿜는 벚꽃은 아름다운 순수한 처녀의 모습과도 닯아 있으며 나무에 가득히 있는 꽃들을 보면 부와 번영을 뜻하기도 하는 것 같네요.^^

 

 

목련

 

목련은 숲 속에서 자라는 식물 중 하나입니다. 꽃은 4월 중순부터 나무에 잎이 나기 전에 피며 꽃잎은 백색, 꽃의 중간 부분은 연한 홍색이며 향기가 있습니다. 목련은 연꽃처럼 생긴 꽃이 나무에 달린다는 뜻으로 여러 송이가 무리를 이루고 꽃잎을 마주하며 피어납니다.

목련꽃은 아름다운 꽃이기도 하지만 꽃을 말려 꽃차로 마시면 두통 치통 치료에 좋은 효능이 있습니다.

 

 

 

 

목련에도 슬픈 사랑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살고 있는 어여쁜 공주는 북 쪽에 있는 바다 신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몰래 북쪽 바다 신을 보러 집을 나와 바다 신을 찾아갔지만 바다 신에게는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을 금치 못하여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이를 안 바다신은 자신의 아내에게 영원히 잠이 들게 하는 약을 먹여 공주 옆에 같이 묻고 평생 두 여자만 바라보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 후 공주의 무덤에는 하얀 목련이, 아내의 무덤에는 붉은 목련이 피었다고 합니다. 목련의 꽃말이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숭고한 정신, 아쉬운 사랑, 고귀함 이란 말들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민들레

 

민들레는 봄에 많이 피기도 하지만 일 년 내내 피는 꽃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과 들에 흔히 자라는 꽃이며 반그늘이나 양지에서 초양의 비옥도에 관계없이 잘 자랍니다. 민들레의 어린잎은 식용, 뿌리를 포함한 전초는 약용으로도 쓰입니다.

민들레는 생명력이 강한 식물 중 하나로 겨울에는 잎과 줄기가 시들어 죽지만 그 뿌리는 살아남아 다시 꽃을 피우는 것이 마치 밟아도 다시 일어나는 백성들과 같다하여 민초라고 불렀으며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호칭을 붙였다고 합니다.

 

 

 

 

옛날 노아의 대홍수 때 온 천지에 물이 차오르자 모두들 도망을 갔는데 민들레만은 발이 빠지지 않아 도망을 가지 못했고, 사나운 물결이 목까지 차오자 민들레는 두려움에 떨다가 그만 머리가 하얗게 다세어 버렸습니다. 민들레는 마지막으로 구원의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은 가엾게 여겨 그 씨앗을 바람에 날려 멀리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피어나게 해주었습니다. 민들레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까지도 얼굴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비롯하여 민들레의 꽃말이 행복이 아닐까 싶습니다. 민들레처럼 우리의 행복은 일 년 내내 우리의 곁에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네요.

 

꽃들로 가득한 봄.

꽃 속 전설과 의미를 알고 주변의 꽃들을 보면 더 아름답게 보일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꽃과 이야기로 올 해의 봄을 가득 채워 나가시는 건 어떠세요?^^ 













 


Posted by 광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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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 : 남풍전
○ 장 소 : 빛고을시민문화관 1층 전시장

○ 일 시 : 2.12(화)~17(일)

○ 전시내용
- 일상생활의 예술적인 경험을 토대로 구상과 비구상의 작품을 회화,조소,설치 등의 조형방법으로 표현


‘남풍’

 

때마침 남쪽에서 더운 바람이 불어와 풍향계를 흔듭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어디에서 불어오는 지도 모르는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대학시절 우리는 세상에 가졌던 불만과 그것을 고쳐보려는 이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린 우리들은 세상에 대한 경험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이상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만 먹으면 내가 가진 이상을 시행착오 없이 달성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확실하던 이상과 신념이 흔들리는 나를 발견합니다.

어떤 시인은 인간의 흔들리는 신념을 나침반에 비유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이 바위처럼 굳건하지 못함을 책망하며 한 숨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침반 바늘 끝이 흔들릴 때만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을 수 있다고 끝맺으면서 자신의 흔들리는 신념을 긍정합니다.

전남대 미술교육과는 비슷한 시기에 다니게 된 인연으로 오랫동안 만나오던 우리들은 작은 전시를 기획해봅니다. 인생의 분기점에서 흔들리는 우리는 서로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흔들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이런 전시를 통해 잠시 서로에게 기대어 봅니다. 만남이란 불완전한 개인들이 자신의 결점을 채우고 서로를 의지하는 것일 테니까요.




‘남풍’

 

전남대학교 미술교육과를 비슷한 시기에 다니게 된 인연으로 오랫동안 만나오던 이들이 계획하는 작은 전시회의 타이틀이자 앞으로 이들 모임을 부를 이름이다. 이들은 왜 이런 이름으로 전시를 기획했을까?

사실 이들 모임이 지난 10여 년 간 사용한 이름은 ‘미남협’이었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회원들의 모임 이름으로 ‘미남협’은 당시 대학 분위기를 말해준다. 학생 운동의 끝자락에서 다소 심각하게, 더러는 장난스럽게 친목 모임인 그들의 모임에도 ‘미술교육과 남학생 협의회’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그 시기가 학생 운동의 끝자락이었다는 것은 학생 운동 자체의 내부 붕괴라기보다 구체적 적이 사라진 시기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동안 학생 운동이 싸워오던 거시적이고 구체적이던 적이 사라지고 보다 미시적 차원의 적이 삶의 일상으로 내려온 것이다. 이제 싸움은 거인과의 싸움이 아니라, 세균과의 싸움으로 바뀌었다. 거인과의 싸움은 확실한 적을 이기기 위한 연대를 가능하게 하지만, 각자의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균과의 싸움은 연대가 불가능하다. 오직 홀로 자신 일상의 무의미와 싸워야 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10여 년, 우리는 그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을까? 패배하고 있을까?

최근 모임의 이름을 ‘남풍’으로 바꾸고 그 이름으로 전시를 기획한 것은 그런 일상의 작은 싸움을 표현하고 보는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 이다. 바람은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다. 거의 무한대의 변수를 가진 열린 공간 속에서 일어났다가 서로 부딪히고 사라진다. 풍향계가 어렴풋이 그 방향과 힘을 알려주지만 그 방향은 잠시도 쉬지 않고 흔들린다. 바람은 결코 일정한 방향을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에 변화하지 않는 게 있을 수 없지만 잠시의 안도도 허락하지 않는 바람은 그 속에서 줄타기해야 하는 우리에게 긴장을 요구한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정직한 땅에 기대어 땀 흘린 만큼 거두어 드리는 생과 비교한다면 말이다.

각자의 삶속에서 미시적인 적과 또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 그 형태를 바꾸는 적과 싸워야 한다면, 그 속에서 우리가 서로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은 예술뿐이지 않을까? 왜냐하면 예술에서만 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그 속에서 형성된 내면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고, 표현자의 의도와 감상자의 해석 속에서 그 의미가 무한히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남풍’ 전시의 기록은 승리의 기록이기 보다 ‘패배’의 기록일 것이다. 우리가 일상 속으로 얼마나 볼품없이 파묻히고 있는지, 우리의 감각이 얼마나 더 무뎌질 수 있는지, 우리가 먹고 사는 일에 얽매여 얼마나 무의미하게 살 수 있는지... 그런 패배의 기록을 보고 싶다면, 그래서 자신의 패배 역시 확인하고 싶다면, 결국은 죽음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인생을 확인하고 거기에서 도리어 용기를 얻고 싶다면 가보자.

보도자료 인용

자료 제공 해 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남풍전을 계획하며

“시 한 줄 쓴다고 뭐가 달라지나?

최근 방영된 ‘학교 2013’의 대사입니다.

한 없이 빈약해 보이는 시 한 줄, 그림 한 점이

우리의 삶에 작은 변화라도 줄 수 있는 것일까요?

대부분 미술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는 우리들에게

다시금 되돌아오는 무거운 질문입니다.

고백하건데 누군가 정색하며 이렇게 묻는다면

뼛속 깊숙이 그렇게 믿는다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동안 게으른 창작활동이 이를 반증합니다.

스스로 예술 창작 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는 자가

다른 사람에게 그 필요성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한편으론 빈곤한 창작 활동을 자책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막연한 의무감에 쫓기지 않으면서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

 

2013년 2월 남풍 회원 일동




김상채 작가의 난

활짝 핀 난꽃에서 봄의 향기를 만끽하며~



김성대 작가의 영취산의 봄

김성대 (金星大, kim,sung-dae)

개인전

*2008 제2회 개인전 - 山動樂(서구문화센터갤러리 송)

*2003 제1회 개인전(상계갤러리)

단체전

*2012 광주민미협 전국민족미술제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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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02.13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발빠른 나현철 기자님 수고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