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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라 광주/문화와 예술

16회 임방울 국악 전야제 관람기


저녁 7시 문화예술 회관



 얼쑤 ~ 좋~다.
 명창 안숙선의 사철가를 들으며
 여기저기서 관중들이 내는 소리다.
역시 여류 명창답게 소리 가락이 잘도 넘어간다.
이어서 부른 그 유명한 '쑥대머리'는 임방울 선생을
 기리기에 충분했다.
 
 이번 임방울 국악 전야제는 비엔날레 기간과 겹쳐서 문화적 볼거리가 다양했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리고 국악이란 고정 관념과 달리 현대식 음악과 결합한 국악의 여러 장르를 경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체로 박진감 있는 흐름은 답답한 마음을 풀어 놓기에 충분했다.

사실 '쑥대머리' 판소리를 안 후 이번 국악제 전야제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초등생 딸이 다양한 음악 세계를 경험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좀 늦게 도착한 우리는 관람석이 꽉찬 바람에 그냥 중앙 통로 바닥에 앉아서 관람을 했다.
그래도 흥에 겨워 박수를 치면서 자리를 내내 지켰다.


배 띄워라 - 오정해 노래


 영화 서편제로 유명한 오정해씨가 사회를 봤다.
'모듬북'으로 첫 운을 땐 전야제는 '추억'이라는 임방울 선생의 사연 깊은 순서에 이르자 모두들 숙연해 지며 서정적인 분위기로 변했다.
가슴이 아려왔다.

임방울이 사랑했다는 산호주라는 여인의 죽음을 보고 즉석에서 불렀다는 이 노래는 임방울이 죽기까지 애창했다고 한다.
그 사연을 소개한다.

 임방울이 소년시절 고용살이를 했는데 주인집에 동갑네기 산호주란 딸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모의 반대로 헤어졌고, 산호는 부잣집 아들한테 시집을 가고 소식이 끊어졌다. 그리고  둘은 운명의 장난처럼 어느 연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이때 산호주는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광주로 돌아와 요리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사랑을 이루었고 임방울은 2년 동안 송학원의 내실에 잠적해버렸다. 그래서 전속계약을 한  레코드사는 임방울을 백방으로 찾았으나 종적을 알 수 없었다. 김산호주는 미색이 빼어나서 천하의 소리꾼 임방울의 발목을 이태동안이나 잡아두었더 것이다. 그런데, 산호주와 함께 지내는 동안 임방울의 목이 상하고 말았다 .크게 낙심한 임방울은 산호주에게 떠나간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송학원을 떠나 홀연히 지리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임방울이 떠나고 산호주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으며, 임방울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지리산으로 찾아 헤매었다. 토굴 속에서 독공하고 있던 임방울은 애써 산호주를 외면하면서 만나주지 않았다. 산호주는 죽어가는 목숨이 되었고, 임종이라도 지켜보라는 사람들의 말에 토굴 속에서 나온 임방울은 이미 저승길에 접어든 산호주를 껴안고 슬피 울며, 진양조의 ‘추억’이라는 노래를 즉흥적으로 불렀다.

 앞산도 첩첩허고 뒷산도 첩첩헌디 혼은 어디로 향하신가.
황천이 어디라고 그리 쉽게 가럈던가.
그리 쉽게 가럈거든 당초에 나오지를 말았거나
왔다가면 그저나 가지 노던 터에다 값진 이름을 두고 가며,
동무에게 정을 두고 가서 가시는 님을 하직코 가셨지만
세상에 있난 동무들은 백년을 통곡헌들,
보러 올줄을 어느 뉘가 알며,
천하를 죄다 외고 다닌들 어느 곳에서 만나보리오.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전생에 무슨 함의로 이 세상에 알게 되야서
각도 각골 방방곡곡 다니던 일을 곽속에 들어도 나는 못잊겠네.
원명이 그뿐이었던가. 이리 급작시리 황천객이 되얐는가.
무정허고 야속헌 사람아. 어데를 가고서 못오는가.

 보고지고 보고지고 임의 얼굴을 보고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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