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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재미와 일상

호남인물열전_ '독립운동가' 서재필


▲독립운동가 _송재 '서재필' 선생




본관은 대구(大邱)이며, 송재(松齋)이다.
1864년(고종) 전라남도 보성(寶城郡) 문덕면(文德面)에서 출생 했으며 
7세 때 서울에 올라와 외숙인 판서(判書) 김성근(金聲根) 밑에서 한학을 배웠다.
1882년 19세 때 알성시(謁聖試)에 합격하였다.


1884년 12월 김옥균이 주도하는 갑신정변에 가담하였고 
정변의 실패 로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해리 힐만 아카데미(Harry Hillman Academy)를 졸업하고
워싱턴으로 이주하여
1889년 컬럼비안대학(Columbian University 지금의 조지워싱턴대학)에 입학하였다.
1890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고,
1893년 대학을 졸업 의사 면허를 취득하였다.
이듬해 미국인 뮤리얼 암스트롱(Muriel Amstrong)과 결혼하였다.


1896년 4월 정부예산을 얻어 독립신문을 발간 한후
독립협회(獨立協會)를 결성 하고
모화관(慕華館)을 인수·개축하여 독립회관으로 하였다.

펜실베이니아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있다가 3·1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한국에 친화적인 성향의 미국인을 규합하는
한국친우회(The League of Friends of Korea)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후원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1994년 4월 8일 미국에서 전명운(田明雲) 의사의 유해와 함께 옮겨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2008년 5월 6일 미국 워싱턴에 동상이 건립되었고,
워싱턴시에서 이 날을 '서재필의 날'로 선포하였다.
같은 해 7월 8일에는 그가 태어난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에
'서재필기념공원'개관하였다.
 



△ 서재필 선생이 창간한...
한국 최초 '민간'신문 _독립신문
(지금의 신문과 달리..
오른쪽에서 부터 글을 읽는 부분이 흥미롭다.)


△ 청국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독립문'을 세우다.





 △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_'서재필 기념공원'에 세워진 그의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