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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추억의 흑백사진 8. 58년 충효동 왕버들나무 위의 추억

왕버들나무 위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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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뜨거운 여름 날, 아이들은 마을 앞으로 흐르는 맑은 개천에서 멱을 감았으리라. 물놀이에 지친 아이들은 들판을 가로질러 오며 소꼴을 뜯겼을 것이며, 더러 개구리며 뱀을 잡아 구워먹기도 했을 것이다. 때론 뒷산에 올라 떫은 ‘맹감’을 따먹으며 허기를 달랬을 것이며, 그러고도 긴 여름의 땡볕이 지겨울 무렵이면 마을로 돌아와 그늘 넉넉한 왕버들 밑에서 낮잠 한 숨 자지 않았을까? 더욱이 얼마나 놀기에 좋은 왕버들인가?  마치 아이들 놀이터 전용으로 만든 것인 양, 큰 줄기는 옆으로 누워 개구쟁이들을 유혹하지 않는가?

1958년에 찍었다는 충효동 왕버들 나무아래 풍경은 꼭 그렇다. 꼴 뜯기고 들어오다 매어놓은 소의 모습까지도.

이곳 광주시 북구 충효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그 개구쟁이들뿐 아니라, 1970년대 이전 우리네 어린 시절의 시골은 다 그랬다. 여름이면, ‘아이스께끼’ 장사라도 오지 않는 이상은 무료하고 힘들었다. 놀다 놀다 할 일없으면 저렇게 나무 위에 올라가서까지 놀았으니까. 그냥 올라가서 놀기만 했으면 그나마 얌전한 편. 어떤 녀석은 그 곳에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임시 아지트까지 마련해놓고 자기만의 세상을 구축하기도 했다. 사진 속의 충효동 왕버들 나무를 타고 노는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그래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놀 시간이 없어서 놀지 못한다. 컴퓨터며 TV에 무한한 종류의 장난감까지 놀거리는 널려있지만 학원 다니느라 시간이 없다. 어디 저렇게 나무 위까지 올라가서 놀 생각을 하겠는가. 떨어져 다칠까봐 말리는 어른들도 훨씬 많을 테고. 그나마 시골에는 인구감소로 놀 아이들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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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왕버들은 지금도 건재하다. 요즘 광주 시민들의 휴식처로 꽤 유명해진 충효동 광주호 생태공원 일대의 이정표 역할을 하며 위용을 뽐내고 있다. 400년 수령을 자랑하는 세 그루의 왕버들은 풍성한 그늘 뿐만 아니라 위안과 추억까지 주며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이 왕버들은 충장공 김덕령의 후손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가 16세기 중반에 심었다고 전해진다. 정조가 김덕령 일가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비각 앞에 심어진 것으로 보아 모두 충장공과 관련되는 나무로 보인다. 이 왕버들 주변엔 당초 소나무 한 그루와 매화나무, 왕버들 다섯 그루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버들 세 그루만 남았다.

이제 왕버들나무는 보호를 위해 아이들이 무시로 올라가 놀 수 없게 됐다(광주시 기념물 제6호). 하지만 왕버들나무를 타고 노는 사진이 어른들에겐 어린 시절의 진한 추억을 느낄 수 있게 한다.


- 글. 김옥렬 (전대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