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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재미와 일상

[5.18민주화운동]의 가슴 아픈 역사가 왜곡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딸기농부가 다녀온 5.18국립묘지

 


[5.18민주화운동]의 가슴 아픈 역사가 왜곡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딸기농부가 다녀온  5.18국립묘지


 

한치의 거짓도 없이, 꾸밈도 없이, 역사적 사실 그대로 후손에게 알려 주어야 하는 것이 참 역사입니다.


딸기농부는 80년 5.18 민중항쟁의 가슴 아픈 역사와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국민의 한사람으로 스무살을 조금 넘은 시점에 전라도라는 땅을 밟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10여년이 지난 1990년에 생전 처음으로 전라도라는 땅에 첫 발을 내딛었던 것이지요. 당시의 망월동 민주열사들의 묘역도 처음 가보았고,  머리카락이 쭈삣서며 소름돋는 공포가 온 몸을 엄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10여년이 더 지난 지금! 수많은 민주열사들이 조국의 정의로운 민주화를 위해 목숨도 아까워 하지 않는 투쟁의 결과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2002년 광주민주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시행과 국립5.18묘지로 승격, 2011년 5.18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이르는 등 80년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앞당긴 승리의 항쟁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5월 27일.... 1980년 5월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사납게 타오르던 5.18의 거대한 불꽃은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칼을 앞세운 무자비한 작전에 피를 토하던...33년이 지난 그날에 하늘도 그 슬픔 역사를 알듯이 거세게 5.18의 숭고한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망월동 묘역을 적시고 있었다. 마침 누나와 동생으로 보이는 남매가 민주열사들의 사진에서 올바른 역사를 들여다 보고 있다. 역사는 감춘다고 감추어 지는 것이 아님을, 왜곡한다고 왜곡이 되어지는게 아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들이 흘린 값진 피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거룩한 밑거름이다. 


5월의 영령들을 달래는 비가 촉촉히 내리는 망월동... 

피어 보지도 못한 어린 열사의 작은 사진앞의 국화 한송이에 한참을 머문다. 


신록으로 물드는 5월에 이루지 못한 꿈을 간직한 숭고한 영령들의 묘소에는 

순백의 영혼을 상징하듯 국화들이 고스란히 내리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막아주고 있는 듯 했다.


돌아오지 못할 자식을 잃은 슬픔이 몇 백년이 지난다 한들 잊혀질까...

부모보다 먼저 간 자식의 묘비 앞에  술 한잔과 담배 한개피로 아픔을 달래던 

이제는 백발과 이마에 주름 가득한 자식 잃은 어느 노모의 한숨이 들려 오는 듯 하다.

고이 잠드소서..


작은 유리관속의 대한민국...정의....라는 글귀가 

한참이나 내 시선을 붙잡는다.  이 땅에 진정 정의는 살아 있는 것일까...?


비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의 몸짓이 절규하는 외침을 닮은 듯 귓전을 때린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국민들이 지난 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함께 불렀고, 또 그렇게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민주화를 염원하는 여러나라의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불려지고 있습니다.  프랑사는 대혁명시기에 불려졌던 행진곡인 "라 마르세이유" 를 국가로 지정하여 그 의미를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자랑스럽고 대표적인 5월의 노래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고 5.18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되어 영원히 후손들에게 불려져야 합니다.


[온라인 서명 바로가기  아래 그림을 눌러주세요!]


망월동 묘역을 지나 5.18민주화운동 국립묘지를 참배합니다.

5.18민중항쟁 33주년을 기념하는 추모의 글 리본들이 내리는 빗물을 다 맞아가며 손에 손잡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열창하듯이 비바람에 나부낍니다. 


민주의 문을 들어서자  저 멀리 5.18민중항쟁 기념탑이 우뚝허니 5월의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을 대변하듯 솟아 있습니다.  탑신 중간에 두손을 모으고 있는 형상은 추모와 염원을 상징하며  탑 중간에 있는 둥근 조형물은 "난형환조"로 구천을 떠도는 영령들의 혼백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생명의 씨앗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1980년 5월... 처절했던 비극의 광주는 다시는 되풀이 되서는 안됩니다.

죽은자의 희생이 값진 유산이 되기위해서는  산자들의 올바른 역사알기의 책임이 뒤따라야 합니다.



■5.18 민주화 운동의 의의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과 군화의 짓밟힘에도 그 뜨거운 불씨마저 짓밟혀 버린것은 아니었다. 그 불씨는 혹독한 시절에도 꺼지지 않고 더욱 빛을 발하면서  그날 이후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결코 꺼지지 않는 불길로 남아있다. 그것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스러움 이었으며 오욕의 역사가 아니라 긍지의 역사였다. 광주시민들의 자랑과 긍지는  단순한 향토애나 반항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항쟁기간을 가장 뜨겁게 살았던 시민들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권력의 탄압이나 각종 언론의 왜곡선전에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고 있다.  


■광주의 진실 

광주의 시민 모두가 자발적으로 공수부대의 야만적인 폭력에 굴하지 않고 하나로 싸웠다는 것이다.  당국에 의해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으로 왜곡매도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는 길이고,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항쟁의 전 기간동안  광주시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위기를 가장 인간다운 삶의 협동정신으로 대처했다는 것, 계엄군에 완전포위되면서도 먹을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음식을 나누고, 피가 부족한 부상자에게는 피를 나누어 주며, 일손이 필요할 때는 시민들 누구나가 달려들어 그 일을 했던 것이다. 

광주시는 공식적인 치안체계가 완전붕괴되었지만 거의 완벽한 치안체계를 유지했고, 총기류가 시민들의 수중에 있었어도  단 한건의 불상사도 발생치 않았고, 금융기관, 금,은방등의 범죄자들이 노릴 만한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점에서 5.18민주화 운동이 오로지 민주주의의 공동체 구현을 위한 시민봉기 였다는 점을 증명한다. 


■5.18민주화 운동의 교훈과 의미

한국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한국전쟁이후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극소수의 사회진영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혈맹관계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러나 광주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신군부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급속하게 깨지기 시작, 80년 이후 반미운동의 고양을 가져오게 된다. 

일반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1980년 봄의 민주화 운동을 부정하고 들어선 제 5공화국은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체제로 일관하자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이 해마다 5월이 되면 국민들의 단합된 움직임이 일어나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던 독재체제가 어느정도  불식되고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직막으로 각종 지배구조에 억눌려 있던 일반 시민들에게 주인의식의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5.18민주화 운동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뒤바꾼 전대미문의 시민무장봉기였다. 광주시민의 선혈을 발판으로 정권을 잡은  5, 6 공화국의 광주양민학살만행과 천문학적인 부정부패가 만천하에 드러나, 결국은 역사와 정의와 법에 의한 단죄행로를 걷고 5 공화국 7년동안 민주화운동의 실체를 밝혀줄 각종 자료와 증거들이 소리없이 사라져 갔지만 6 공화국의 광주특위 청문호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이 상당부분 밝혀졌다.  점점 거세지는  "5.18민주화 운동 책임자 처벌" 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의해 "역사에 의한 단죄" 가 아닌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과 생존권, 저항권을 말살한 헌정 초유의 내란집단으로 규정되어  전 세계의 관심속에  "법과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기의 재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과거의 역사적 잔재와 의식의 소유자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각분야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며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5.18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왜곡하고 은폐하려 해도 국민과 정의의 힘에 의해 낱낱이 밝혀질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고 기약하기 위해선  한 시대의 아픔과 절규에서 스스로 벗어나 우리 사회의 가능성과 역동성을 하나로 묶는 공동체의 실현이 요구된다.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은 더욱 더 찬란한 역사속의 빛으로 승화될 것이다.  내용출처- 광주광역시 5.18기념문화센터 사료편찬위원회


[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 훼손사례 신고센터 가기]


망월동 구묘역과  5.18국립묘지를 둘러보는 두어 시간 내내 온 몸에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돋는 느낌이었다.  민중항쟁에 뛰어드는 순간은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없었다면 차마 하지 못했던 그 때...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의 간절하고 값진 희생과  염원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진전된 민주주의 속에 우리가 있을 것이다.  7~8년 전에 참배했을 때에 역사의 문을 지나 지하 전시실에 들어갔을 때 차마 눈뜨고는 볼수 없었던 참혹한 희생자들의 사진자료들이 이제는 교체가 되고 어린이 역사체험 학습관으로 리모델링 되어 한결 마음이 가벼워 졌다. 고귀한 희생이 조금씩 빛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느끼며 딸기농부 차분해지는 마음으로 돌아 왔습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옮겼던 딸기농부의 5.18민중항쟁 역사 바로 알기 홀로답사 돌아오는길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답니다.  

  • 최종환 2013.06.16 21:51

    5.18민주화운동의 역사 왜곡은 열굴을 가리고 하늘을 보는것과 다름 없습니다.
    1980년 5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쳐지는데...
    마치 북한군 600명이 내려와 광주시민을 선동해서 일으킨 폭동이었다는 허무맹랑한 왜곡된 사실을
    사실인양 보도하는 일부종편 방송이나 일배라는 사이트의 왜곡사실을 젊은 사람들이 접했을때 어떤 생각을
    하게될지 걱정이 앞섭니다.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배워야 할 청소년 들에게 바른 역사 인식을 위해서 교과서에 기술해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올바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5.18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