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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광주근교여행지] 백제불교의 원류 상사화로 유명한 불갑사

[광주근교여행지] 백제불교의 원류 상사화로 유명한 불갑사

 

인도스님 마라난타존자와 불갑사...

천년의 찬란한 빛 영광의 대표적인 사찰 불갑사...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가보지 못했던 불갑사..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에 마라난타 스님이

동진에서 오자 왕이 교외로 나가 궁궐안으로 맞아들여 예경함으로써

백제불교가 시작되었다. 그 이듬해 한산에 사찰을 세우고 열명을 출가 시켰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짚어보아야 할 것은 마라난타존자는 공식적인

국가적 전교사절로 온 것이 아니라면 국왕이 처음부터

마라난타존자를 영접했다고 보는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오히려 마라난타존자가 법성포에 당도하여 영광의 법성포 및

불갑사 지역, 나주의 불호사 지역 등 남쪽지역에 교화의 발길을

재촉한 뒤에 당시의 수도인 한산으로 향해 온다는 이야기를

국왕이 듣고 나서 궁궐로 영접해 들여 가르침을 받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마라난타존자는 여환삼매(如幻三昧)를 얻어,

불에 들어가도 타지않으며 쇠붙이나 돌로 변신할 수 있는 등

무궁무진하게 화현(化現)하였다." 라고 하였고,

해동고승전에서는 "신통한 이적으로 사물에 감통(感通)하니

그 변화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사방으로 돌아 다니는데 뜻을 두어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았으며, 교화의 인연이 닿는 곳이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나서서 갔다." 라고 하여 마라난타존자의

신통력과 불법전파의 열정을 나타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나주 불호사의 상량문과 단청기에는 마라난타존자 창건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마라난타존자가 법성포로 상륙하여

불갑사와 불호사를 창건한 후 한산으로 올라가 불법을 전파했다고

전래 되어오는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간접적 고증자료 이기도하다.

마라난타존자의 불법전래 후 392년 백제 아신왕은

불법을 믿으라는 교령을 전국적으로 내리게 됩니다.

 

 

그 후 약 140년간 불법에 관한 기록은 나타나 있지 않고

단지 미륵 불광사 사적의 "백제 성왕 7년(526년)에 겸익이

인도에서 배달다삼장과 함께 범어(梵語)원전 논장(論藏(아비달마))과

5부 율장(律藏)을 가지고 귀국하자 왕은 나라안의 명승 28인을

소집하여 겸익법사와 함께 율장 72권을 번역하게 했다." 는 점과,

 

 

조선도교사(이능화著)의"백제에서는 고구려와 달리 도교가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로 불교가 성행하여 승려와 사람이 매우 많았다."

고 하는 기록을 통하여 백제시대에 불교가 융성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역시 불갑사도 백제 말기까지 여전히

사원의 역할을 유지하고 수행교화의 도량으로 융성하였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멸망할 때 영광지역의 저항이 거세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불갑사도 전화를 면치 못하고 쇠폐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한국호랑이가 마지막으로 잡혔다는 불갑사..

정갈하고 단정한 느낌이 드는 사찰로서 상사화와 무척 잘어울리는

사찰로서 천년의 신비를 잘 간직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