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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그 날을 기억하며 걷는, 5. 18 민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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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을 기억하며 걷는, 5.18 민주올레!"


5.18 광주 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 행사들의 다양한 행사 중에서,
저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5.18 민주올레' 였습니다.

평소에도 걷는 것을 좋아하고, 5.18광주 민중항쟁 역사현장을 걸으며 성찰과 다짐을 확인하는 걷기 운동이였기 때문이였어요.

평소에도 오며 가며,, 지나갔던 길이였지만
의미를 두고 걷는 것이였기 때문에 생각만해도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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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오후 2시부터 5.18의 시발점 이 된 "광주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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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민주올레 운영위원회의 '5·18민주올레'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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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올레' 의 코스 안내도 (클릭해서 보세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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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분의 행사 소개와 함께,
전국에서 오신 5.18 올레 참가자 분들, 스님, 5.18 관련 위원회 분들, 각 방송사관계자분들, 그리고 일본에서 오신 분들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들이 모인 행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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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5.18 민주올레 행사에 참석하셨답니다 ^^ "반갑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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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오신분들의 소개인사를 하시는데, 열두분 정도 참석하셨더라구요. 일본에서 광주까지 오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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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올레 출발~!"
줄을 지어 서 있는 참가자들과, 5.18 올레길에 대한 취재를 하고 계시는 모습이 보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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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올레'의 출발지이자,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5.18 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된 전남대학교 정문의 현재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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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5.15. 전남대학교 / 출처 : 5·18기념재단 / 사진 : 나경택>

1980년 5월 17일 자정 불법적인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따라 전남대에 진주한 계엄군은 도서관 등에서 밤을 세워 학문에 몰두하고 있던 학생들을 무조건 구타하고 불법 구금하면서 항쟁의 불씨는 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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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중항쟁사지 1 전남대학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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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중항쟁의 역사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셨던 김용철 5.18 사적지 해설가님과 열심히 듣는 참가자 분들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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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정문에서 광주역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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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은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광주시민과 계엄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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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지난, 현재 광주역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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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일대로, 현재는 광주은행 본점이 있습니다.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시외버스공용터미널이 있던 곳으로, 전남 일원을 잇는 교통 중심지였던 곳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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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오후 이곳에서 계엄군의 과잉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고 해요,
계엄군은 대합실과 지하도에까지 난입, 총검을 휘둘러 이곳은 일시에 피비린내 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으며, 이 소식은 시외버스를 통해 시외로 나간 사람들에 의해 곳곳으로 전파돼 항쟁이 전남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날 낮, 시골에서 올라오는 어머니를 마중하러 공용터미널에 갔었습니다. 그러나 시외버스들이 제대로 운행되지 않아 돌아오려고 광남로 쪽으로 나있는 문을 나와 걸어오는데 시외에서 버스가 들어오는 입구 안쪽에 시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어요. 아마도 7,8구는 되었을 겁니다. 더욱 제가 놀란 것은 맨 위의 시체가 엎어져 있었는데 등에 X표로 칼자국이 나있더군요.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5. 19. 18시경, #김영택, 10일간의 취재수첩, 사계절,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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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올레' 참가자를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 아마도 5·18민주올레의 참가이유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은 아니였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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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5.22 광주 / 출처 : 5·18기념재단 / 사진 : 황종건>

광주양동시장은 대인시장과 함께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상인들이 시민군들에게 주먹밥과 생필품을 제공하는 등, 모든 시민이 하나가 되는 대동정신을 앞장서 발휘했던 곳입니다.

상인들 모두가 털고 일어나 김밥과 떡, 음료수, 약품 등을 모아 시민군을 지원하고 시민군을 뜨겁게 격려했던 모습은 지금도 시민들 가슴을 훈훈하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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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올레'의 도착지인 구도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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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은 5·18광주민중항쟁 본부가 있던 곳이며, 최후의 항전을 벌이다 수많은 시민군이 이곳에서 환화했다고 합니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무력 진압에 맞써 싸운 시민군 최후의 결사항전지로, 마지막 항전에서 수많은 시민군들이 산화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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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올레' 중간에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행사에 참가하셨던 참가자분들의 완보 후, 기념메달을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당신들의 열정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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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촬영에 흔쾌히 응해 주신 서울에서 오신 친절한 참가자분입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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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올레' 행사에 참석하신 참가자들에게는 완보기념 메달을  주었답니다. ^ . ^
참가자분 중 한분은 "금메달 딴 것보다 더 좋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ㅎㅎ
저 역시 어떤 메달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 . ^ * 주위사람들에게 자랑도 하구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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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올레' 참가자에게 주는 완보기념 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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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앞면 / -민주주의와 인사하세요! 철수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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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 뒷면 / 민주주의 역사현장을 어깨 겯고 함께 걷자! 2010 민주올레 완보 기념

-광주의 시민자치 공동체-

1980년 5월 21일 도청 앞에서 집단발포를 자행한 공수부대는 오후 4시경 광주에서 퇴각하기 시작했으며, 이미 경찰 병력도 자체 해산되어 광주는 국가공권력의 공백상태가 됨과  동시에 시외전화가 두절되고 외부로 통하는 모든 도로가 철저히 차단된 채 고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립무원의 광주는 자체적으로 항쟁지도부를 구성하여 시민군을 중심으로 치안질서를 유지하는 한편, 광주를 고립시키고 있는 계엄군과 저항했습니다.

자치공동체 기간 동안 광주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높은 도덕성을 발휘하였습니다. 시내 금융기관에 보관되어 있던 수천억원의 돈이 그대로 지켜졌으며, 시민들이 십시일반 거둔 쌀로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제공하고 생필품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매점매석이 없었습니다.


광주시민은 무장폭도가 아닙니다.
다만 민주주의를 위해 항쟁을 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댓가는 너무나 참혹하였습니다.



이번 '5·18민주올레'의 첫 시작을 함께 한 저의 소감은,
역사현장에서 설명을 들으니 마치 그 때 당시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며,
'5·18광주민중항쟁'의 역사와 그 정신을 다시 한번 더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느낀 이 느낌을 다른 많은분들도 느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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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18민주올레'  참가자들의 모습



** 참고 : 2010 민주올레 운영위원회 '5·18민주올레' 가이드북
               민주올레 Daum 카페 : http://cafe.daum.net/minjuwalking
               5·18 기념재단 : http://www.518.org/welcom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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