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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려라 광주/정보

[무등산]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No.2 환벽당 -빛창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No.2 환벽당





지난번에 무등산 옛길 3구간과 관련있는 무등산 고샅길 첫번째 이야기 '풍암정사'를 전해드렸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풍암정사에서 고샅길을 따라 환벽당을 향하는 길을 알려드리려합니다.
고샅길을 따라가다보면 중간중간 무등산 옛길이 보이는데요. 고샅길을 통해 무등산의 다양한 등산로를 알게되고, 그 길을 따라 보이는 문화재는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아직 무등산 고샅길이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은 전 포스팅과 아래 설명을 참고해주세요^^


빛창에 있는 포스팅 무등산 관련 포스팅 글 1박 2일 이수근과 함께한 광주 광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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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aygj.com/1074
[무등산]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No.1 풍암정사-빛창 - > http://saygj.com/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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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크게보입니다]




[고샅길 구간] 좌측

풍암정사 - 민간신앙지 - 삼괴정 - 평무들 - 취가정 - 환벽당 - 지실마을 - 한국가사문학관 - 식영정 - 수남학구당 - 죽림재 - 만수정 - 동강조대 - 개선마을 - 벅수 - 개선사지석등 - 금곡마을 - 분청사기가마터 - 풍암정사


[무등산 옛길 3구간]우측

장원삼거리-장원정-4수원지-덕봉-충장사-풍암정-도요지-호수생태원-취가정-환벽당



무등산 고샅길이란?

길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길을 품는다.
늘 다녀서 그것이 나를 이끄는 길인지 조차도 알아채기 힘든 도시의 길이 있는가 하면, 발길 끊겨 수풀에 덮히고 기억조차 희미해진 옛길이 있습니다. 잊혀진 그 길도 지금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분명 한 4,5백년전쯤엔 댕기머리 학동부터 고명한 선비까지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품어내며 살아갔을 길입니다.

여기 무등의 북동쪽으로 흐르는 원효계곡, 그 물줄기가 제법 깊어져 짙푸르러지는 끝자락엔 사람들의 기억을 비웃기라도 하듯 노송을 벗삼아 4백년 풍상을 이겨낸 풍암정사가 우뚝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 시작해 5백년 역사가 깃든 오십리 고샅길을 다시 걷습니다. 우리들에게 잊혀졌던 아주 오래된 길로 일부는 아스팔트로 덮히고 또 일부는 아직 가시덤불에 숨겨진 길일 겁니다.


광주호를 한바퀴 도는 여정과 겹칩니다. 1976년에 만들어진 댐으로 물에 잠길 것들은 호숫가 곳곳에 옮겨 놓았습니다. 무등 산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내를 이루고 들을 적시고 길을 만들고 또 사람을 키워냈을 그 길로 학동들은 골목골목을 넘어서 이웃마을 배움터를 오가고 마을사람들은 일상의 무거운 짐들을 지고 삶의 질긴 끈을 이어가고 당내의 내노라 하는 선비들은 서로 오가며 학문을 논하고 시가를 짓고 세상을 이야기했을 소통의 그 길입니다.


 



무등산 고샅길 이야기 #2 한벽당




■ 풍암정에서 한벽당까지 여행 코스 point_삼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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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암정에서 나와 분청사기를 지나면 얼마안가 가까운 곳에 삼괴정이 있습니다.
삼괴정은 1900년대 한말에 문병일이 아버지'문유식'의 뜻을 받들어 아버지의 호를 따서 삼괴정(三愧亭)을 만들었습니다.
논 가운데에 있는 초라함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정자지만 '삼괴정'에는 삼괴.  미립(未立 : 뜻을 세우지 못함), 미현친(未縣親 : 아버지의 명예를 높이지 못함), 미교자(未敎子 :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함)의 세 가지 부끄러움을 조상님께 저질었다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 풍암정에서 한벽당까지 여행 코스 point_지실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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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벽당을 향하기 전에 들리게되는 지실마을입니다. 돌담장으로 둘러쌓여있고 조금은 휑한 이 마을에 무슨 볼거리가 있나하고 그냥 지나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마을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마을이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松江) 정철(1536~1593)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동네라는 걸 금방 아실 수 있습니다.



 


[무등산 고샅길_김덕령 장군 생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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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벽당을 향하는 길에 김덕령 장군 생가터 표시가 있기에 잠깐 들려보았습니다. 표지판을 보니 무등산옛길 3구간 코스 안에 있네요^^ 화살표를 따라 올라가는데 허한 길가에 이 쪽 길이 맞나 잠시 머뭇거리면서 올라갔는데 곧 생가터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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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했던 것과 달리 잘 재현하고 보존한 모습에 깜짝놀랐습니다. 어떤 분이기에 이렇게 잘 보존하였을까 옆에 놓인 설명을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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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장군(1567~1596)이 살았던 집터이다. 장군은 1593년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켜 익호장군이란 사호를 받았고 이듬에 장문포에서 이순신장군과 의령에서는 곽재우의병장과 합세하여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충용장군으로 알려져왔다. 1596년 이몽학의 난이 일어남에 이를 평정하고자 운봉까지 진군하였으니 적장과 내통이 있었다고 하여 서울로 압송. 고문에 시달려 옥중에서 죽었다. 숙종 때에 그 억울함이 신원되고 정조는 의정부좌찬성을 추증. 시호를 충장이라하였다.
광주광역시에서는 충장공 김덕령 (忠壯公 金德齡 : 1567 ~ 1596년)을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광주 중심지의 상징도로인 충장로 입구부터 광주일고를 지나 경열로에 연결되는 도로를 충장로로 부르고 있다.


광주 '충장로'에 이러한 의미가 담겨있을 줄이야. 지나칠까말까 고민했는데 한번 들려보길 잘 한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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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령장군 생가터를 둘러보고 환벽당을 향해가는 길에 아기자기한 찻집과 무등산옛길 3구간을 알리는 표지판, 생태공원 등이 주변에 있었습니다. 풍암정사에서부터 쭉 내려오신 분이라면 여기서 잠시 휴식을 가지시는 것도 나쁘지않을 것 같네요^^

환벽당을 찾아가며 보인 광주 스토리텔링투어 승강장! 시티투어버스가 이 곳까지오니 김덕령장군 생가터나 환벽당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쉽게 찾아오실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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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고샅길_환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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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령장군 생가터에서 환벽당까지는 걸어서 약 5분에서 10분정도 걸립니다. 길따라 쭉 가다보나 환벽당, 취가정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기 때문에 길을 잃을 걱정이 없답니다^^ 환벽당 쪽으로 가는 길 옆에 흐르고 있는 천은 창계(滄溪)천이 흐르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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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당 입구에 다오니 앞에 또 무등산옛길 표지판이 있네요. 여기가 무등산옛길 11.3Km의 마지막 지점입니다.
표지판 바로 맞은편에 있는 것이 바로 '환벽당'
환벽당을 향해 있는 계단은 초록빛으로 쌓여있어서 너무나 상쾌한 기분이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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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다 올라가니 드디어 모습을 보이는 '환벽당'

환벽당(環碧堂)은 지방기념물 제1호로 자(字)는 공로(恭老), 호가 사촌(沙村)인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1501~1572년)가 지었다.
푸르름을 사방에 둘렀다는 '환벽당'이라는 이름은 신잠(申潛)이 지었다고 합니다. 김윤제가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와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낸 곳이로, 정철이 벼슬길에 나아가기까지 머무르며 공부하였다는 유래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자 안에는 송시열이 쓴 '환벽당' 글씨와 더블어 임억령,조자이의 시가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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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아래를 내려보면 작은 용소가 보이는데요? 이 용소에 김윤제와 정철의 만남에 대한 전설이 서려있습니다.

어느 더운 여름날, 김윤제는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다가 집 아래 용소에서 용이 놀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놀래 잠을 깨고 가보니 한 소년이 멱을 감고 있었고, 그 소년은 바로 정철이었습니다. 그때 정철은 식영정 옆 지실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순천 처가에 가 있는 형 정소를 만나러 가던 길에 용소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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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제는 이런 인연으로 만난 정철을 환벽당에서 지내게 하면서 송강 정철이 열여섯살 소년시절부터 스물일곱 살에 등과할 때까지 공부를 시키고 외손녀 사위로 삼았으며, 관계로 나아갈 때까지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습니다. 정철은 이곳에서 머물려 기대승, 김인후 등 고명한 학자들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임억령에게서 시를 배웠으며 여러 사람을 사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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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당은 비스듬한 비탈에 자연석 축대를 쌓고 지은 남향 건물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동쪽 2칸은 마루로 되어 있고, 서쪽 2칸이 방이며 그 앞에 반 칸짜리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원래는 정각 형태였는데 후대에 중건할 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더위를 피해 환벽당의 마루에 앉으면 앞으로 무등산과 시원한 창계천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여기서 바람이 살살 불어오면 그 시원함은 표현할 수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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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고샅길_취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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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벽당에서 그리멀지 않은 곳에 취가정이 위치해 있습니다.
바로 옆에 사람이 살고 있어서 취가정일까 아닐까 조금 고민했지만 표지판은 취가정이라고하니 쓱 들어가보았습니다.
그러자 나무 사이에 숨어있던 취가정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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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충장공 김덕령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고종27(1889년)년에 김만식을 비롯한 후손들이 세웠습니다.
취가정이란 이름은 모함을 받아 죽임을 당한 김덕령장군이 술에 취한 모습으로 권필의 꿈에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노래를 부르자, 권필이 시를 지어 원혼을 달랬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합니다. 즉 김덕령장군이 취했을 때 부른 노래라는 뜻으로 '취가정'이라 이름 지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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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전쟁으로 불타버린 것을 1955년에 다시 세운 현재의 취가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작은 방이 있습니다.
한벽당보다 덜하지만 취가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또한 또다른 시원함과 감동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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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간 계곡과 산세좋은 곳에 위치한 풍암정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이렇게 자연과 함께 소소한 아름다움도 좋은듯합니다^^
물론 풍암정과 환벽당 모두 다녀오면 더욱 더 좋겠죠?
여러분도 이번 주말에 고샅길 여행 어떠신가요^^